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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랑 운영자 201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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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8장1절14절

아버지의 사랑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주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불교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반야바라밀경 즉 금강경 제3분을 대승정종분이라고 하고 금강경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보살 즉 깨달은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마음의 자세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기독교의 용어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리스도로 깨어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 혹은 태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세상에 무수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녀, 깨달음에 가까운 사람과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남을 도우는 사람과 도둑질 하는 사람 등등 구분을 하자면 끝이 없이 나열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이런 모든 사람이 전부 구원을 받기를 원하고 그렇게 행동해야 함을 중생무변서원도라고 합니다. 정말 깨달아서 진리를 만난 사람은 그를 통하여 양과 수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자기를 통하여 이런 일이 일어나는 사람의 마음의 자세는 자기가 누구도 구원을 받게 한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부처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부처로 보이고 그리스도로 깨어난 예수님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이 보입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보이지 않으면 그리스도로 깨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금강경 제3분의 요점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면 중생이고 자기를 알면 중생이 즉 부처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깨어날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 그리고 앞으로 살게 될 모든 사람을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번 생애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가 그리스도로 깨어남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존재로 창조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문제가 사람이 이 진리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 진리로 돌아가면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와 함께 아들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며 모든 것의 주인이신 분이 아버지이시고 그와 함께 그의 집에 사는 아들이라면 문제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기뻐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모든 사람이 이 진리를 알기를 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나는 말씀이 본문입니다.

이 세상살이의 경험으로는 천국에서도 누가 크고 적으냐는 위계질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이냐고 묻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을 받은 예수께서 바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한 가운데 세우시고 그를 두고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설명하십니다.

어린 아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태어난 것 외에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태어난 것도 자기가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돌아올 수 있는 공로가 아무 것도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일 뿐 아니라 그런 마음이 아니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에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어떤 가문에서 태어나고 그 집의 성을 따르는 일은 받아들일 수밖에 다른 길을 없습니다.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아버지로 창조하신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받아들이는 일 외에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그 사실을 바꿀 수 있는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의 경험 때문에 자기가 한 어떤 공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결단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로 나를 창조하신 아들 그리스도이고 이 사실을 바꿀 수 있는 일이 일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천국에서는 큰 자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또 세상에서 어떤 일을 경험하든 아버지의 집을 떠난 적이 없으며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변하지 않음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고 아버지의 아들답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에 깨어난 사람들이 보이는 자세가 나 아닌 사람 즉 대상에 대한 차별이 사라짐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남이 나와 다르지 않은 그리스도라는 진리로 깨어난 사람이 보여야 하는 의식을 두고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을 영접하고 그리스도로 깨어나는 일이 성경공부하고 봉사하고 열심히 수행함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어린 아이가 하늘에서 온 사람임을 알아보는 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내 옆에서 갑남을녀로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시는 말씀이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하십니다. 내 눈에는 보잘 것 없고 내 인생에 중요한 사람인 것 같지 않아 무시하고 그리스도로 대접할 수 없으면 내가 하늘로 가고 그리스도로 깨어나는 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눈에 하늘로 가는 길도 보입니다.

작은 자라고 생각되어 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리지 않는다면 연자 맷돌이 목에 달려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일이 더 낫다고 하십니다. 무슨 방법을 동원하여서라도 작은 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부처이고 그리스도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 깨어난 사람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문제가 있고 화가 있는 이유가 이웃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보는 눈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납니다. 이런 일이 없을 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없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상 이웃은 이겨야 하는 대상이지 그리스도로 모셔야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이런 태도가 사람의 상식일 수는 있으나 그런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로 깨어나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을 찾아도 한 사람도 찾을 수 없다고 한탄하시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깨어난 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끝을 알 수 없는 윤회의 고통 속으로 헤매게 됩니다. 이웃을 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리지 않음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에 대한 감각이 생겨야 합니다. 그 심각성이 느껴지면 각오를 하게 됩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모든 일보다 순위에서 제일 먼저이고, 그보다 급한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이 손이나 발이나 눈이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고 빼어버리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일도 내가 그리스도로 깨어나는 일보다 중요하거나 먼저 일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지옥불로 들어가는 일이라면 피하지 않아야 될 일은 없고 감당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보는 시각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마지막 경고의 말씀이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은 우리의 평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를 그리스도로 알아보는 일이 우리의 몫이고 그를 알아보지 못하면 여기가 지옥으로 변합니다. 명심해야 할 일은 우리의 평가와는 달리 그들의 천사가 하늘에서는 항상 아버지의 얼굴을 뵙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알려주십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은 이웃을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셨다면 나를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부정적인 경험과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신다는 진리가 사실로 다가 오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하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백일몽처럼 남의 이야기이고 허황된 말로 여겨집니다.

하나님께는 부분과 전체가 다르지 않습니다. 구분이 없이 전체가 하나입니다. 모든 파도가 물이듯 물이 아닌 파도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아니거나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나를 찾으셔야 하고 내가 아들로 깨어날 때까지 한없이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이 진리를 비유로 설명하시는 말씀이 우리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 양과 길 잃은 한 마리 양의 비유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괜찮은 것 같은데 나만 버림을 받고 혼자 외로움에 시달리는 우리의 내면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씀입니다. 아무도 없을 뿐 아니라 살 수도 없는 광야에 홀로 버려진 것과 같은 절망 속에서 헤매는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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