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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열리는 은총 운영자 202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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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장43절51절

하늘이 열리는 은총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아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만난 감격이 있는 사람은 다른 차원의 세계를 보았다는 경험이 생기고 그런 경험을 전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예수님을 알아 본 사람은 세례 요한입니다. 그를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있어 본 세례 요한의 두 제자 중 한 사람이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과 함께 머물고 나서 자기 형 시몬에게 가서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면서 형을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옵니다. 동생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온 시몬을 보신 예수께서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라고 바꿉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감동이 이제는 세상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와 같은 사람이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던 곳이 세례 요한과 함께 머물던 곳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사람을 변화시킬 힘이 있음이 확인된 예수께서 고향인 갈릴리로 가시려고 나섭니다. 나가시다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사람인 빌립을 만납니다. 아마 그도 동네 사람인 안드레와 베드로와 함께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으로 방문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빌립이 갈릴리로 출발하시려는 예수님의 눈에 보인 것입니다.

빌립을 보신 예수께서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안드레와 베드로는 예수께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스스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예수께서 먼서 부르시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빌립을 따르라고 초청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인 예수께서 빌립에게서 그리스도로 깨어날 수 있게 진보한 영혼이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전생에서 수행한 전력이 있든 아니면 이번 생에서 선행을 한 인연이든 그가 세상 사람인 에고에서 그리스도로 깨어날 수 있게 익어 있음을 보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빌립이 순순히 따른 것은 아마 동네 사람인 안드레와 베드로의 영향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부르심을 듣고 따른다는 것은 그의 말을 듣기 위함입니다. 내 생각과 감정 그리고 느낌을 내려놓고 따르게 된 사람이 하는 말과 그로부터 나오는 분위기 속으로 들어갑니다. 나보다 중요하고 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서 자기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께서 따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따라간 빌립은 자기가 이제껏 경험한 세상과는 다른 의식의 차원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스도로 깨어난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힘을 느낀 것입니다. 이런 감동을 자기만 가지고 있을 수 없어 자기가 아는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이 세상에 오리라고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사람은 만났다고 전합니다. 따르라고 한 말씀을 듣고 가서 함께 머물렀더니 성경의 기록한 사람을 만난 엄청난 경험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지금도 사람들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초청하십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난 모든 생각과 감정 그리고 느낌들을 내려놓고 침묵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청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초청을 받고 침묵 안으로 들어가면 내가 이제까지 경험하고 아는 세상과는 다른 차원의 세상이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경의 말씀이 기록된 문자가 아니라 실재의 세계임을 깨닫게 되는 은총이 임합니다.

문제는 초청을 받았다는 느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초청이 지금은 침묵에로의 초청입니다. 생각과 감정 그리고 기억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을 떠나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는 길도 열릴 수가 없습니다. 나보다 중요하고 위에 있으며 더 진보한 사람을 만나 그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면 내가 알고 경험한 것을 내려놓고 그의 말을 듣는 것 외에 그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열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침묵에로의 초청이 그리스도께서 나를 따르라는 초청임을 느끼는 사람은 깨어날 수 있게 무르익은 사람이고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빌립이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선지자들이 기록한 사람이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들은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자기들의 고향으로 잘 아는 지역인데 그런 시골에서 성경에서 오리라고 기록된 사람이 나리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매일이 평범한 일상이었고 지루한 시골생활이 계속되는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나다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합니다. 빌립이 자기의 경험에서 나오는 힘으로 하는 말에 나다나엘도 거절할 수 없어 빌립을 따라 예수님께로 옵니다. 별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빌립의 말을 무시할 수 없어 따라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빌립을 따라 당신께로 나오는 나다나엘을 보고 그리스도인 예수께서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하십니다. 나다나엘의 경험과 생각 등을 넘어 그 안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그리스도를 보시고 예수님은 참 이스라엘 사람이고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나다나엘의 참나를 보시고 깨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충분히 거절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빌립의 말을 거절하지 않고 따라오는 나다나엘 안에서 진리를 향한 열정, 깨어나기를 원하는 간절함을 읽어내시고 이런 말을 하시는 것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하늘의 문을 여는 은총이 임하게 합니다.

별 기대 없이 와서 보라고 하는 빌립의 말을 듣고 따라 온 자기에게 이런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어떻게 나를 아시고 그런 말을 하시는지 묻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일 수 없지 않냐는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의아해 하는 빌립에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넘어 내 안에서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 간사함이 없는 참나를 보시는 분을 만난 감격이 나다나엘로 하여금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게 합니다. 나다나엘이 그리스도의 임재에 깨어납니다. 그리고 그를 자기의 삶의 주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와 세상의 주인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침묵 속에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행복하려면 깊이 생각하고 무엇이 생기고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경험으로 보면 침묵은 무의미합니다. 내 안에 무슨 좋은 것이 있고 선한 것이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는 말과 같습니다.

혼란스러운 생각, 어지러운 감정, 정리되지 않은 느낌들, 실패와 상처에 대한 기억들로 차 있는 내 안으로 들어가는 일에 무슨 좋은 것이 있다고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면으로 여행인 침묵을 피하고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여깁니다. 될 수 있으면 침묵과 혼자 있음을 피하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그래서 생각 속으로 내 밖으로 향하므로 살수록 더 혼란스러워지고 어려워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으로 내면으로 침묵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그러면 내가 생각과 경험으로 만든 세상과 다른 세계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성경의 말씀들이 기록이 아니라 나를 설명하고 내 안에서 내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차원이라는 것이 분명해지기 시작합니다.

침묵이 깊어질수록 나를 나보다 잘 아시고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에 깨어나고 그리스도를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내 삶의 현장에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 뵙고 그분을 임금으로 모실 수 있으면 삶의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고 내가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에 도달한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을 많이 가지고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임재에 깨어나는 것입니다.

 

깨어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말씀으로 본문이 마무리됩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보았다고 즉 내가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내가 그리스도임을 믿느냐고 하시면서 이보다 더 큰 일도 보리라고 하십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이 세상의 주인으로 알아보는 차원을 넘어 더 큰 은총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께서 더 큰 일로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임재에 깨어나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열리면 하늘이 열리는 은총이 임한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 위에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하십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가는 도중 한 곳에서 꿈을 꿉니다. 그 꿈에 땅에 세워진 사닥다리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봅니다. 그 꿈을 꾼 후 그곳 이름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합니다. 도망으로 말미암아 피곤한 몸을 누인 곳이 벧엘로 변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침묵 중에서 참나로 만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내가 있는 여기가 땅과 하늘이 이어지는 거룩한 곳으로 변합니다.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라고 하시면서 하늘과 땅이 이어진다고 하십니다. 실제의 사건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삶의 현장 그리고 침묵으로 머무는 곳이 하늘과 땅이 이어지는 곳으로 변화되는 일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가 얼마나 큰가를 알려주시는 장면입니다.

갈릴리 지방의 사람들인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이 갈릴리를 떠나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유대로 간 것은 영적인 목마름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증이 그리스도를 만나 베드로로 변하고 그리스도를 만난 감격이 자기들이 서 있는 곳을 땅과 하늘이 이어지는 거룩한 곳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들이 한 일은 와서 보라는 그리스도의 초청을 거절하지 않고 그를 알아본 일이 전부입니다.

우리 안에게 일어나는 진리를 향한 하나님의 향한 영적인 목마름이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 곳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의 현장을 하늘과 땅이 이어지는 거룩한 곳으로 변하게 하는 은총이 임할 것입니다. 그런 위대한 은총이 시작되는 해가 금년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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