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말씀

  • 홈 >
  • 말씀 >
  • 주일예배말씀
주일예배말씀
평안과 형통함에로의 초청 운영자 2020-02-02
  • 추천 0
  • 댓글 0
  • 조회 85

http://saegil.onmam.com/bbs/bbsView/18/5685786

 

시122편

평안과 형통함에로의 초청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요한복음에 예수께서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하지도 말라”(요14;27)라고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깨어나신 예수께서 제자로 따르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제일 주시고 싶은 선물이 당신에게 있는 평안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받아야 하는 선물이 하늘로부터 오는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서신서에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시는 말씀이 없는 서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선물이 은혜와 평강이라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안에 살면서 하는 모든 행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안입니다. 돈을 벌거나 출세를 하거나 인기나 권력을 얻기 위하여 최선을 노력을 하는데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달성하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살이에서 형통함이 있으면 즉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마음의 평안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종착점은 불안한 마음을 평안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생살이의 역설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하여 내가 하는 행동으로 형통함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을 하나 형통할수록 더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불안해진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아지거나 혹은 인기가 많아지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평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걱정이 커지고 안식할 수 있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마음의 안식과 평안과 반대로 가게 됩니다. 이것을 실감할 수가 없어 같은 실수를 끝없이 반복하면서 사는 것이 세상살이의 모습입니다.

 

사람이 의식적으로는 모를 수 있어도 무의식의 차원에서는 모든 문제가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깨달아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진리가 숨어있습니다. 사회가 변하면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질 수 있어도 종교가 시간을 넘어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가 하나님을 향한 즉 절대진리를 향한 갈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식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평안과 형통함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기 때문에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하였을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라고 합니다. 우리 존재가 영원히 하나님께 고착되어 있음을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절대진리를 향한 이끄심을 마음으로 느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자는 권유에 기쁨을 느낀 사람은 이미 예루살렘 성문 즉 하나님이 아버지로 계시는 집에 들어섭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가자는 말이 마음에 울리는 사람의 마음이 곧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물리적인 장소로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가자는 말을 듣고 기쁨으로 여호와의 집으로 들어가서 본 것이 첫째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잘 짜여진 성읍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의 무질서와 혼돈과는 다른 세상으로 들어왔다는 고백입니다. 보고 듣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치가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혼란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호와의 지파들이 그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올라가는 것을 봅니다. 올라가자는 말을 듣고 가기 전에는 몰랐는데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자기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가고 있습니다. 영적인 동반자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게 올라가는 길과 방법이 전례에 나와 있다는 것을 봅니다.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길과 방법이 모호한 것이 아니라 이미 확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곳에 심판의 보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을 분별하여 판단하는 무시무시한 심판의 보좌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집에 들어와 보니까 돈과 권력과 명예를 향한 노력으로 살려고 하는 세상과 모든 것이 이미 완료되어 선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와 차이가 분명해졌다는 뜻입니다. 이 진리를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7-18)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서 그 안에 있는 진리를 본 시편기자가 권면하는 말씀이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입니다. 말씀드린 예루살렘은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는 우리의 마음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제일 우선적으로 그리고 중요하게 구해야 하는 것이 마음의 평안입니다.

영적으로 깨어난 사람인가 아닌가를 식별하는 기준이 그 사람으로부터 평안이 나오는가 아닌가로 구분합니다. 사람의 상식으로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고 사람이 모여들게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고 예수께서 내가 너를 모른다고 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 안에 평화가 머물고 있어 옆에 있는 사람이 평화를 느낄 수 없으면 빛을 가장한 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평안하면 하나님의 임재에 깨어납니다. 무의식 속에서 숨어계신 것처럼 보였던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당신의 모습을 분명하게 의식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서 사람의 의식은 이 세상이 머무는 곳일 수도 있고 평안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계시는 집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분명해지고 그분과의 사귐으로 나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 참나가 다르지 않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의식의 차원으로 진보한 사람이 형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건과 사람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드러내는 증거들입니다. 이런 의식의 차원의 사람에게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라고 하시는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계신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성이고 궁중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불안과 걱정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평안과 형통함이 머무는 곳으로 변합니다. 평안과 형통함은 내가 노력하여 얻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주어져야 삶의 불안과 불확실함으로부터 벗어납니다. 내 존재 자체가 평안과 형통이라는 깨달음이 임하면 불안과 불확실함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됩니다.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가자고 불러도 기쁨으로 가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그곳에 평안과 형통이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헤매는 세상 사람들을 보고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 세대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눅7;31-32)라고 하십니다. 어떤 말을 하여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을 보고 안타까워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마음에 잠재의식으로 전생의 업보, 현생의 과거의 기억과 상처로 열등감과 상처 그리고 잡념들이 가득합니다. 내 마음은 그런 것들만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침묵으로 마음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이런 것들만 나오기 때문에 침묵을 수단으로 마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침묵 안으로 들어가면 귀신들린다는 말도 합니다.

침묵에 꾸준히 머물면 잠재의식에 쌓여 있던 것들이 다 나오게 됩니다. 침묵은 내 마음에 쌓인 것들을 나오게 해서 떠나게 합니다. 내 마음에 쌓였던 것들이 떠나면 마음은 본래 하나님과 아들께서 계시는 집임이 드러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집이고 성이며 궁중입니다.

 

침묵 속에서 잡념에 시달리는 것이 기도일 수 없고 무의미하다고 생각됩니다. 기도가 하나님께 무슨 응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면 기도가 이루어지는 유일한 길은 침묵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잡념에 시달리는 일을 참는 것입니다. 잡념에 시달리는 것보다 더 크고 보람된 일을 없습니다. 그것이 나를 하나님의 임재로 나를 데려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가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잡념안에 쌓여 있다고 생각되는 내 마음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내 노력과 행동으로는 평안과 형통으로 멀어집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내 마음에 쌓여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면 아버지와 아들이 드러나고 평안과 형통함이 이미 나에게 선물로 주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내가 바로 평안이며 형통함이라는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이런 은총을 비는 마무리 기도가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입니다.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한 최상의 바람이 그들의 마음에 평안이 머무는 것입니다.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그런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들의 마음이 곧 우리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금년은 시편기자의 권면처럼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진보하는 은총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먹어야 하는 생명의 떡 운영자 2020.02.09 0 80
다음글 내 영혼의 기다림 운영자 2020.02.02 0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