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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없는 자로 깨어남 운영자 202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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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7장53절8장11절

죄 없는 자로 깨어남

 

53.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추수를 끝내고 수확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이는 절기가 이스라엘에서는 초막절입니다. 우리나라의 명절에 비유하자면 추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막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어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 갈릴리 시골에서 초막절의 예배에 참석하기 위하여 올라온 청년인 예수가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모습이 이스라엘의 종교와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던 엘리트들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랍게 여기면서 하는 말이 “이 사람은 배우지 않았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요7;15)입니다. 예수께서 사용하시는 말은 갈릴리의 방언이고 또 소위 먹물을 먹은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말입니다. 그의 모습도 세련되지 못한 시골 청년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엘리트들도 자격이 있어야 가르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에서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도 안되는 일이었음을 지적하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배우지도 않았고 그리고 가르칠 수 있는 자격도 없는 사람이 성전에서 무례한 행동을 한다는 지적에 예수께서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요7;34)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방법과 생각으로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길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상식으로는 글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를 알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초막절이 끝나는 날에 서서 외치면서 하는 말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입니다.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엘리트들이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을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에게 왜 그를 잡아오지 않았느냐 묻습니다. 잡아오지 않은 이유를 “그 사람처럼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이제까지 없었나이다”(요7;46)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건이 있었던 초막절이 끝나니까 사람들은 돌아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전에서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감람산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성전으로 다시 오시니까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초막절이 끝났어도 자기 고향인 갈릴리로 돌아가지 않고 성전에서 모여든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종교 엘리트들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묻습니다. 율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였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도 율법에서 말하는 것처럼 돌로 쳐야 한다고 하면 제도 내에 있는 사람이고 자기들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설정한 한계 내에 있는 사람이고 자기들의 말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다른 말을 하면 그를 율법에 따라 제거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하게 됩니다. 아무리 그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기적을 일으키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해도 죽일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는 셈입니다. 율법에 따라 돌로 쳐야 한다고 말하면 자기들의 다스림 내에 있는 사람이고 아니면 죽일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시험을 당하는 예수께서 몸을 굽히고 땅에 무엇을 쓰시는 행동을 합니다. 대답은 하지 않고 땅에 무엇을 쓰는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예수님을 재촉하여 대답하라고 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재촉에 땅에서 일어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그래서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모조리 떠납니다. 마지막에는 예수님과 간음 중에 잡혀온 여자만 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고발을 들은 예수께서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을 쓰신 행동은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고발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묵상하셨을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당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음성에 집중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온 사람이므로 하나님의 이 사건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언지 식별하려는 행동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 아래에서도 아버지의 뜻을 분별하려는 예수님의 마음이 이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땅에 무언가를 쓰시면서 예수님의 마음에 밝아온 조명은 여인이 간음하다 잡혔지만 그런 행동이 그 여인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진실을 바꿀 수 없음을 보셨습니다. 내 실수가 내가 누구인지의 정체성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동일하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제도권에서 지위를 자기라고 착각하지만 그 착각이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라고 정체성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보셨을 것입니다.

이런 조명을 받으시고 하시는 말씀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을 쓰십니다. 당신이 하신 말씀을 다시 아버지께로부터 확인을 받으시는 행동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께 임한 빛이 그를 통하여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떠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에 일어나는 깨달음은 자기들이 간음한 여인에게 죄가 있다는 판단과 그로 말미암은 행동이 전부 투사였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문제가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음은 이런 여인처럼 죄를 범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들의 속마음입니다. 나는 문제가 없는데 다른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므로 내 인생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세상 안에서 사는 사람의 생각의 구조입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에로 깨어났으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행동을 실수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죽어야 하는 죄인이 아니라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실수입니다. 실수 때문에 돌로 쳐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가 우리가 항상 명심해야 할 진리입니다.

 

모든 문제가 너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깨어나지 못한 투사임을 느낀 사람들은 그 현장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떠납니다. 정말로 솔직하고 깨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빛이 임한 그 현장에 그대로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가 드러나는 곳을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 떠나는 모습은 계속해서 마음의 투사로 세상을 탓하면서 살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예수님은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8-19)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이 비추시는 빛 아래 머무는 사람은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 빛 아래 머무는 여인에게 하나님의 자녀를 고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진리를 확인시켜줍니다. 사람에게 고발당하고 정죄당하는 일은 세상에 속한 사람일 때 일어나는 일이지 하나님께 속한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를 고발하거나 정죄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은 예수께서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정죄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든 어디서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해주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열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음을 알려주십니다. 십자가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세상을 이길 수 있음을 보여주시는 표지입니다.

 

마음의 헤아림으로 이 세상 안에서 살면 율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율법만 아니라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내 노력이나 재능 그리고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으로부터도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끝이 없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합니다. 죄를 내가 전부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죄책감을 투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게 있는 문제보다 세상에 있는 문제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큽니다. 환경이 나를 즉 인과응보의 법칙이 나를 지배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내가 만나는 사람 거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내가 잘못하고 열등하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깨어나면 문제가 되는 어떤 일도 없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떤 실수를 하여도 내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녀임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나를 정죄하던 사람들이 전부 떠납니다.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일은 나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용서는 내가 어떤 실수를 했던 내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녀임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간음한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라는 말씀이 제일 먼저 적용되어야 하는 대상은 “나”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부탁하시는 말씀이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입니다. 주기도문에서는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은 세상이나 책이나 정보가 말해주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교회 등 종교제도가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으로부터 나오는 빛이고 확신입니다. 생수의 샘이 내 배에서부터 흘러나옴을 깨닫는 은총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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